티스토리 뷰
목차
고객의 한마디에서 프로젝트는 시작된다
플랜트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의 시작은 거대한 설계도면도, 복잡한 계산서도 아닙니다.
대부분은 아주 간단한 고객사의 요청에서 시작됩니다.
“무알콜 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 한마디만 놓고 보면 프로젝트의 방향은 명확해 보입니다.
무알콜 맥주를 만들면 됩니다.
하지만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이 요청은 아직 설계할 수 있는 요구사항이 아닙니다.
무알콜 맥주를 생산한다는 목표만으로는 어떤 공정을 선택해야 하는지, 설비 규모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 결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프로젝트에서는 고객의 요구를 하나씩 구체적인 설계조건으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번 Beer to Zero Project에서는 바로 이 과정을 하나의 가상의 플랜트 프로젝트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모든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의 출발점인 Customer Request에서 시작합니다.
1. 고객사는 왜 무알콜 맥주를 만들려고 하는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의외로 공정이 아닙니다.
바로 고객이 왜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하는가입니다.
고객사가 “무알콜 맥주 생산설비가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기존 제품군에 무알콜 제품을 추가하려는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기존 생산설비의 유휴능력을 활용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차이는 엔지니어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원하는 것이 단순히 “무알콜 맥주를 만들 수 있는 설비”라면 소규모 Batch Plant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반면 고객이 목표로 하는 것이
“기존 맥주 생산량의 일정 비율을 무알콜 제품으로 전환하는 것”
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기존 생산라인과의 연결, 생산능력, 저장탱크, 유틸리티, CIP, 포장라인까지 검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엔지니어는 고객의 요청을 들었을 때 곧바로 장비를 찾기보다 먼저 질문을 던집니다.
“고객이 최종적으로 달성하려는 것이 무엇인가?”
2. ‘무알콜’이라는 말만으로는 설계할 수 없다
무알콜 맥주 프로젝트에서 가장 먼저 발생하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알코올 함량을 얼마까지 낮춰야 합니까?”
일반적으로 무알콜 또는 논알코올 제품의 표현과 허용되는 알코올 함량은 국가와 규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FDA의 가이드에서는 ‘non-alcoholic’ 제품과 ‘alcohol-free’를 동일한 의미로 보지 않으며, alcohol-free는 검출 가능한 알코올이 없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dealcoholized 제품의 경우 0.5% ABV가 중요한 기준으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고객이 단순히
“알코올 없는 맥주를 만들어 주세요.”
라고 이야기했다고 해서 엔지니어가 바로 설계조건에 0.0% ABV를 입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는 다음과 같이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 Feed Beer의 Alcohol Content는 얼마인가?
- 최종 제품의 목표 ABV는 얼마인가?
- 제품 규격상 허용되는 최대 ABV는 얼마인가?
- 목표값은 평균값인가, 보증값인가?
- 제품 품질에서 중요한 것은 ABV인가, 아니면 맛과 향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모여야 비로소 하나의 Design Basis가 만들어집니다.
3. 고객의 Request와 Engineering Requirement는 다릅니다
여기서 플랜트 엔지니어링의 중요한 개념 하나가 등장합니다.
바로 Requirement Definition입니다.
고객의 최초 요청은 보통 추상적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습니다.
“기존 맥주를 이용해서 무알콜 맥주를 생산하고 싶습니다.”
이를 그대로 설계팀에 전달한다면 엔지니어는 무엇을 설계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엔지니어는 고객의 요청을 다음과 같이 구체화합니다.
| 고객의 요청 | 엔지니어가 확인해야 할 조건 |
| 무알콜 맥주 생산 | 목표 ABV |
| 기존 맥주 사용 | Feed Beer 조건 |
| 대량 생산 | Production Capacity |
| 기존 제품과 유사한 맛 | Sensory Specification |
| 공장에 설치 | Available Space |
| 기존 설비 활용 | Battery Limit |
| 안정적인 생산 | Operating Philosophy |
| 지속적인 생산 | Utility & CIP Requirement |
결국 엔지니어링의 첫 번째 업무는 무언가를 설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전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을 설계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입니다.
4.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무알콜 맥주를 만들 것인가?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무알콜 맥주는 어떻게 만드는가?”
크게 보면 접근방법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애초에 발효 과정에서 알코올 생성을 최소화하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일반적인 맥주를 만든 뒤 생성된 알코올을 후단 공정에서 제거하는 방법입니다.
후자의 경우 대표적으로 membrane filtration과 thermal dealcoholization 같은 물리적 공정이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Reverse Osmosis 기반의 막분리 공정은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처리하여 맥주의 향과 특성을 보존하는 데 유리한 접근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반면 진공 상태에서 alcohol을 stripping 하는 방식도 사용됩니다. 일부 상용 시스템은 저온·저압 조건에서 single-pass stripping을 적용하여 알코올을 제거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바로 설계를 시작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아직 너무 이릅니다.
왜냐하면 공정 선택보다 먼저 고객의 목표를 명확하게 정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5. 엔지니어에게 중요한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한가’만이 아닙니다
프로젝트를 처음 접하는 엔지니어가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는 기술적인 가능성부터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진공 증류를 사용하면 알코올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술적으로 맞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 관점에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고객에게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공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양만큼, 원하는 비용으로 만들 수 있는가?”입니다.
따라서 공정 선정에서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요소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Product Quality
알코올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원래 맥주의 맛, 향, 색상, Body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실제로 무알콜 맥주 프로젝트에서는 알코올 제거 자체뿐 아니라 aroma, flavor, mouthfeel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적인 기술적 과제로 언급됩니다.
Production Capacity
하루에 몇 톤 또는 몇 hL의 맥주를 처리할 것인지에 따라 설비 규모가 달라집니다.
Energy Consumption
가열과 증발을 이용하는 공정인지, 막분리 기반의 공정인지에 따라 필요한 열에너지와 전력량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Utility
Steam, Cooling Water, Chilled Water, Electricity, Instrument Air, CIP 등의 요구량을 검토해야 합니다.
CAPEX & OPEX
설비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초기 투자비뿐 아니라 장기적인 운전비도 중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Existing Plant Integration
신규 공장을 만드는 것인지, 기존 Brewery에 새로운 De-alcoholization Unit을 추가하는 것인지에 따라서 프로젝트의 난이도가 크게 달라집니다.
실제로 기존 양조장에 탈알코올 설비를 추가하는 프로젝트에서는 기존 공정과 새로운 모듈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6. 첫 번째 회의에서 엔지니어가 받아야 할 정보
이제 프로젝트 Kick-off Meeting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객이 회의실에 들어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희는 무알콜 맥주를 생산하고 싶습니다.”
엔지니어는 바로 P&ID를 펼치지 않습니다. 대신 질문 목록을 준비합니다.
Product
- 어떤 종류의 맥주를 Feed로 사용할 것인가?
- Feed Beer의 ABV는 얼마인가?
- 최종 제품의 목표 ABV는 얼마인가?
- 목표 제품의 맛과 향은 기존 제품과 동일해야 하는가?
Capacity
- 시간당 생산량은 얼마인가?
- 하루 운전시간은 몇 시간인가?
- 연간 생산일 수는 얼마인가?
- Batch Operation인가, Continuous Operation인가?
Process
- 기존 양조공정에서 생산된 맥주를 사용할 것인가?
- 별도의 전처리가 필요한가?
- Alcohol 제거 후 물 또는 다른 성분을 보충해야 하는가?
- 최종 Carbonation은 어디에서 수행할 것인가?
Facility
- 기존 공장에 설치할 것인가?
- 신규 건물인가?
- 설치 가능한 공간은 어느 정도인가?
- 기존 Utility를 사용할 수 있는가?
Quality
- 제품 규격은 무엇인가?
- ABV 이외에 관리해야 할 품질 항목은 무엇인가?
- 제품의 맛과 향에 대한 Acceptance Criteria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모이면 프로젝트는 조금씩 모습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7. 고객의 한마디가 Design Basis로 변하는 과정
처음에는 단순했습니다.
“무알콜 맥주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엔지니어의 질문을 거치면서 다음과 같이 변합니다.
- Customer Request
- Product Requirement
- Production Capacity
- Process Requirement
- Utility Requirement
- Equipment Requirement
- Design Basis
이 과정이 바로 플랜트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의 시작입니다.
아직 장비도 선정하지 않았고 P&ID도 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설계의 범위와 목표가 정의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8. Beer to Zero Project의 첫 번째 목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하나의 가상의 고객사를 설정해 보겠습니다.
고객사는 기존에 일반 맥주를 생산하고 있으며, 새로운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무알콜 맥주 제품을 추가하려고 합니다.
고객사의 최초 요구사항은 간단합니다.
“기존 맥주를 원료로 사용하여 무알콜 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 신규 공정을 구축해 주세요.”
하지만 엔지니어에게 이 문장은 프로젝트의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문장을 하나씩 해체하는 것입니다.
-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
- 어떤 제품을 만들 것인가?
- 어떤 품질을 만족해야 하는가?
- 어떤 공정을 사용할 것인가?
- 필요한 Utility는 무엇인가?
- 어떤 장비가 필요한가?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 공장을 실제로 건설하고 운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설계가 아니라 질문입니다
플랜트 엔지니어링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복잡한 계산을 빠르게 수행하는 능력만은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을 계산해야 하는지를 정의하는 능력입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정교한 P&ID를 작성해도 올바른 설계가 될 수 없습니다.
Beer to Zero Project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고객이 요청한 것은 단 한 문장이었습니다.
“무알콜 맥주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제 엔지니어의 역할은 이 한 문장을 실제 Plant를 설계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편에서는 그 첫 번째 질문을 다뤄보겠습니다.
“고객이 말하는 무알콜 맥주란 정확히 무엇인가?”
다음 단계에서는 제품의 알코올 함량, 생산량, 품질, 운전조건 등을 구체화하면서 User Requirement를 정의해 보겠습니다.
Beer to Zero Project 연재 순서
PART 1. 프로젝트의 시작 — 고객의 요구를 정의하다
- Part 1. 고객사 요청 접수 - 프로젝트의 시작
- Part 2.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User Requirement 정의
- Part 3. 무알콜 맥주를 어디까지 만들 것인가 - Product Specification
- Part 4. 하루에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 - 생산능력 결정
- Part 5. 공장을 어디에 지을 것인가 - Site & Utility 검토
- Part 6. 어떤 공정으로 알코올을 제거할 것인가 - Process Selection
- Part 7. 맥주에서 알코올을 어떻게 제거하는가 - Dealcoholization 공정
'제조&기술 실무노트 > Beer to Zero Project 연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Beer to Zero, 프롤로그|하나의 플랜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0) | 2026.08.23 |
|---|